
이 책은 가족붕괴에 직면한 가족을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인지를 보여준 형사소설이다. 저자는 뛰어난 내용구성력을 바탕으로 형사소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와 특이한 결론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형사소설에 젖어 있는 사람들의 뒤통수를 강하게 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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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자신의 전작들의 주인공들을 이 책에 등장시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고 있다. 본론에서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이는 독자로 하여금 주인공들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게 해 초반 내용 몰입을 방해한다. 단지 두 명의 주인공만 등장하는 소설이라면 별 상관없겠지만 이 책은 주인공 두 명만 나오는 소설이 아니다. 이 책엔 두 명의 주인공 이외에 다른 인물들도 다수 등장하는데도 저자는 제대로 된 인물소개를 해주지 않아 독자가 주요 등장인물을 기억하지 못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만 것이다. 뒤로 갈수록 등장인물의 성격이 드러나 점차적으로 파악하게 되긴 하지만 이미 형성된 주인공의 특성을 뒤늦게 알려줘 주인공의 이름을 빨리 각인시켜주지 못한 점은 문제였다고 본다.
반면에 뒤로 갈수록 내용에 몰입하게 만든 구조는 탁월했다고 생각한다. 초반에 이런 저런 인물들의 등장으로 인한 어수선한 분위기를 잠재울 수 있을 정도로 중반부터의 내용은 흥미진진해진다. 이런 걸 다 고려해서 일부러 초반에 어지러운 상황을 연출했던 거라면 저자의 필력은 정말 대단한 것이다. 모든 용의자를 범인으로 의심케 만든 구성력은 이 책의 압권이라 하겠다. 두 개의 반전은 이 책의 가치를 높이는데 큰 역할을 하는데 계속해서 누가 범인일지 고민하게 만든 점은 독자에게 크나큰 재미를 주고도 남는다.
이 책은 총 15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초반에 캐릭터가 잡히지 않는다는 젼이다. 이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다케가미 에쓰로 경사와 이시즈 치카코 형사다. 둘은 주인공들답게 이야기 첫머리에 등장하며 존재를 알린다. 그런데 둘은 주인공인데도 캐릭터가 분명하게 잡히질 않는다. 초반에 제일 먼저 등장해 자신들이 주요 인물이란 점을 보여준 것을 제외하곤 여러 인물들이 한꺼번에 등장하고 나서부터는 다른 인물들에 휩싸여 이렇다 할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다. 왜 그런 것일까? 왜 둘은 이 책의 핵심적인 인물인데도 독자의 뇌리에 금방 각인되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저자가 주인공의 특성을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형사소설 작가들은 독자가 자신이 창조한 캐릭터를 독자에게 바로 인식시키기 위해서 초반에 그들의 특성을 설명하는데 주력한다. 이런 저자의 배려는 독자가 빨리 캐릭터를 파악하게 해 내용에 몰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독자에 대한 이런 배려가 전혀 없다. 주인공을 등장시킨 후 그들을 파악할 만한 특별한 설명을 해주지 않은 채 다른 인물들을 등장시키고 이야기를 전개시키기에 바쁘다. TV 드라마와 달리 소설은 주인공의 얼굴을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들을 인식할 만한 특성을 빨리 습득해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내용은 한창 전개되고 있는데도 등장인물들이 누가 누구인지 헷갈려 그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 건지 제대로 파악하기 어렵다. 아무리 저자가 유명한 작가라 해도 독자들이 모두 그녀의 작품을 한번쯤 읽어봤으리라 생각하는 건 오만이고 착각이다. 전작에 등장한 인물들을 이번 작품에 등장시켰더라도 저자는 독자가 주인공을 인식할 수 있는 설명을 해줬어야 했다. 이런 배려가 부족했던 초반이 좀 아쉽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형사소설에 전지적 작가시점을 사용했다는 젼이다. 대개 형사를 주인공으로 하는 작품엔 3인칭 관찰자 시점을 사용한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이란 3인칭인 ‘그’나 ‘그것’ 등을 주인공으로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관찰하는 시점을 말한다. 그래서 행동을 관찰할 수는 있으나 속을 다 알려줄 수는 없다. 형사소설은 특성상 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기 때문에 형사소설을 쓰는 저자들은 대부분 3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는 뜻밖에도 형사소설을 전지적 작가시점으로 썼다. 전지적(全知的) 작가(作家) 시점(視點)이란 작가가 등장인물의 행동과 태도는 물론 그의 내면세계까지도 분석 설명하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방식을 말한다. 형사소설에선 저자의 사적인 감정개입이 없어야 보다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고 그래야 독자에게 현실세계에서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사건을 다뤘다는 신뢰감을 줄 수 있다. 헌데 저자는 전지적 작가 시점을 선택해 내용 중간 중간에 자신의 생각을 개입시켜 가공의 사건을 꾸며내고 있다는 인상을 강하게 주고 있다. 이로 인해 여기서 벌어진 사건은 현실세계를 고발 내지 반영한다기 보단 저자의 평소 생각을 드러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형사소설의 생명은 객관성이고 논리인데 저자는 심리묘사에 치중한 나머지 이런 중요한 사실을 간과한 것이다. 이런 저자의 실수가 너무나 아쉽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심리묘사와 내용구성이 뛰어나다는 젼이다. 저자는 시종일관 형사들의 활약보단 주로 등장인물들의 심리묘사에 치중하는 면을 보인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들은 사건이 발생하고 나서 형사소설에서 보여주는 전형적인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주인공인 다케가미가 데스크 담당 출신이란 점 때문에 그렇게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형사들은 독자가 형사소설에서 기대하는 행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 즉 형사소설에서 형사들이 보여주는 탐문수사, 잠복, 용의자와의 몸싸움 그리고 범인 체포 장면 등이 이 소설에선 빠져 있다. 형사들의 멋진 활약을 기대한 독자에겐 실망이 아닐 수 없다.
대신에 저자는 형사소설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심리묘사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에서 사회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가족붕괴를 다양한 시선으로 보여줌으로써 가족붕괴가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를 생각하게 한다. 형사소설이 아닌 심리소설이라 해도 무방할 만큼 이 책엔 심리묘사가 자주 등장하는데 자신의 소질을 잘 살려 특이한 형사소설을 창조해 낸 점은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본다.
그리고 범인이 밝혀지는 과정에서 주는 혼란함은 초반 주인공의 특성을 파악하지 못하게 하는 점과 맞물려 저자가 일부러 그런 연출을 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품게 한다. 대개 형사소설엔 용의자를 두고 증거를 발견해 그가 범인임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 책의 범인은 그런 과정을 통해 범인으로 밝혀지지 않는다. 오히려 경찰서에 불려온 모든 이들이 범인이라 해도 믿어질 만큼 저자는 특유의 구성력으로 독자의 추리를 혼란시킨다. 그리곤 끝에 진짜 범인을 보여줌으로써 독자가 계속해서 해온 추리가 틀렸음을 밝혀 뒤통수를 맞은 기분을 느끼게 한다. 이런 면은 다른 형사소설에선 좀처럼 볼 수 없는 것이라 신선함을 느끼게 하는데 충분했다. 이런 저자만의 특성을 부각시켜 보면 이 책을 좀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은 형사소설이라기 보단 심리소설에 더 가깝다. 즉 형사소설을 표방한 심리소설이라고 하는 것이 더 알맞다 이 말이다. 그로 인해 몸으로 활약하는 형사의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다. 하지만 책상에서 펼쳐지는 범인과 형사와의 심리게임을 상당히 치밀하게 묘사해주어 이 또한 범인을 잡는데 있어서 중요한 일임을 제대로 인식시켜 주고 있다. 기존의 형사소설에 식상함을 느꼈다면 이 책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란다.
인상적인 글귀
“우리는 다들 외로워. 현실 생활 속에서는 그 누구도 도저히 진정한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스스로도 진정한 내가 어디에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고독한 거야.”
“부부 사정은 사실 자식도 잘 모르는 법이야.”
이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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