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부실이 아쉬운 형사소설

와인 창고 살인 사건 (양장) 와인 창고 살인 사건 (양장)
알프레드 코마렉 , 진일상 | 북스토리 | 20101115
평점
상세내용보기
| 리뷰 더 보기 | 관련 테마보기


 


 


이 책은 스릴러를 표방했지만 긴장감 제로에 가까운 형사물이다. 저자는 한동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두고 형사와 동네 주민들 간의 신경전을 이용해 스릴러를 추구했다. 하지만 등장인물들의 개성 부족과 사건 담당 형사의 무능함으로 인해 저자의 저작 의도는 무참히 깨지고 만다. 형사물에서 무능한 형사가 나오는 경우는 적지 않지만 사건을 해결하는 경우엔 그래도 어느 정도 존재감과 활약을 보이는데 이 책엔 그런 장면이 전무하다. 이는 형사를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이 곱지 않음을 노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라 하겠다. 좋은 소재와 뛰어난 문장력을 가지고도 캐릭터를 제대로 설정하지 못해 책의 가치를 높이지 못한 점이 너무나 아쉽다.


 


이 책은 총 25개의 소파트로 구성되어 있다. 지금부터 난 내가 주목한 것들 위주로 그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겠다.


 


첫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오스트리아에선 경찰이 퇴근 후엔 민간인이 된다는 젼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시몬 폴트 경위는 자신의 근무 시간이 지나면 경찰신분을 벗고 민간인으로 돌아온다. 즉 폴트 경위에겐 자신의 근무시간에만 경찰 권한이 주어지고 근무 외 시간엔 권한이 사라져 다른 민간인들과 다를 바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나 독자의 혼란을 초래한다. 왜냐하면 한국인들은 경찰은 24시간 내내 권한이 주어져 범인을 잡을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한국인들은 경찰이 퇴근해서도 경찰 권한이 있을 것이라 믿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방송매체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일반적으로 우린 경찰하면 24시간 근무하는 공무원으로 생각한다. 예전에 TV에서 수사반장이란 프로그램과 수사25시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었다. 두 프로그램 다 형사를 주인공으로 세워 형사들의 일상을 보여주면서 그들의 이미지를 시청자들에게 각인시켰다. 대개 이런 곳에서 등장한 경찰은 쉴 틈 없이 철야근무잠복근무, 때론 비상근무를 했는데 이런 장면이 자주 연출되다 보니 경찰은 24시간 일을 한다는 고정관념이 생긴 것으로 보인다. 경찰도 공무원 중 하나인데 쉬는 날도 없고 쉴 틈도 없다는 건 말이 되지 않는다. 한국경찰도 다른 나라 경찰과 마찬가지로 쉴 땐 경찰 권한이 없는 평범한 민간인이 되는데 정부에서 일부러 범인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일부러 이런 경찰 이미지를 우리에게 각인시켜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21C인 지금도 경찰 및 국정원의 이미지를 좋게 하기 위해서 멋진 경찰을 등장시켜 경찰을 미화하고 있는데 이런 걸 보면 왜 이렇게 지속적으로 주인공이 경찰인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는지 알만 하다.


 


두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경찰을 게으르고 무능한 인물로 묘사한 젼이다. 경찰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소설에서 경찰은 두 부류로 나뉜다. 한 부류는 어떤 사건이든 맡기만 하면 해결 못하는 사건이 없는 유능한 사람들이고, 다른 한 부류는 탐정 내지 전문가의 도움 없이는 사건을 전혀 해결하지 못하는 무능한 사람들이다. 사실 경찰이라고 해서 모두가 유능할 수도 없고 또한 모두가 무능할 수도 없다. 하지만 소설 속에선 바둑판에서 흑백을 가르듯 유무능이 확실히 나뉜다. 왜 그런 것일까? 왜 경찰 소설에선 늘 이렇게 극단적으로 형사의 유능과 무능이 갈리는 것일까?


 


그 이유는 바로 경찰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선차 때문이다. 평소 경찰을 유능하게 본 저자라면 경찰에 대한 동경이 작용해 경찰을 마치 슈퍼 히어로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사상에 젖어 있는 저자의 작품엔 늘 경찰은 어떠한 사건이든 완벽히 해결하고 이론의 여지없이 깔끔하게 뒤처리를 한다. 반면에 평소 경찰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본 저자라면 경찰을 게으르고 무능한 인물로 묘사해 사람들에게 외면 받는 것은 기본으로 깔고 사건 해결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팔푼이로 비추기 일쑤다. 이 책의 저자는 경찰을 매우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이라 주인공인 폴트는 결코 낮지 않은 계급인 경위인데도 무능의 대명사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경위가 쉽게 오를 수 있는 계급이 아니라는 사실과 무능하면 절대 서장까지 오를 수 없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폴트가 무능한데도 훗날 경찰 서장까지 오를 수 있음을 암시한 점은 저자가 평소 경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이렇게 저자의 경찰에 대한 호불호를 찾는 것도 경찰소설에서만 맛볼 수 있는 재미가 아닌가 싶다.


 


마지막 세 번째로 내가 주목한 것은 ‘내용에 비해 캐릭터가 밋밋하다는 젼이다. 대개 형사물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개성이 강한 편이다. 특히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는 눈에 띄는 특징을 가지고 있어 독자의 머릿속에 강하게 각인되곤 한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의 등장인물들은 하나같이 별다른 특징이 없다. 지하 와인창고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이라는 독특한 소재를 갖고 있는 것에 비해 이 책의 등장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하기만 하다. 물론 한동네에서 벌어진 사건을 이야기했다는 점에서 동네 사람들을 평범하게 묘사한 부분은 현실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도 아니고 실제 사건을 이야기한 신문기사도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개성 강한 인물에 매력을 느끼고 기대를 하는 독자들에게 평범한 등장인물은 그저 실망만 안겨줄 뿐이다. 입체적이고 개성이 뚜렷한 캐릭터들을 알아가는 재미도 소설을 읽는 묘미 중 하나인데 저자는 이런 부분을 너무 간과한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책은 소재도 흥미롭고 내용도 재미있는 편이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캐릭터가 부실해 재미를 떨어뜨리고 있다. 저자 정도의 문장력과 내용 구성력 그리고 소재 선택능력이면 충분히 더 좋은 소설을 쓸 수 있었을 텐데 등장인물에 대한 투자 소홀로 인해 불완전한 소설을 만든 점이 너무 안타깝다. 이것이 저자 특유의 저술방식인지 아니면 유럽 스릴러의 특징인지는 모르겠지만 다음 작품을 쓸 땐 주인공과 등장인물의 개성에 좀 더 시간을 할애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와인창고라는 좀처럼 접하기 힘든 장소에서 벌어진, 끝까지 범인을 파악할 수 없는 살인사건에 관심이 있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보기 바란다.



이글은 "인터파크도서"에서 작성되었습니다.

by 최고조조 | 2011/08/30 21:15 | 소설/수필/시 | 트랙백 | 덧글(0)

트랙백 주소 : http://d3h333.egloos.com/tb/10769357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